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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연 혁

영암읍은 영암군청의 소재지로 백제 때는 월라군(月奈郡)에, 신라 때는 영암군에 속했던 영암의 중심 고을이다. 영암군의 첫머리라 하여 군시면이라 하였고, 조선후기(朝鮮後期) 기록인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의하면 군시면이 65 마을에 군종면(郡綜面)이 36개 마을이고 행정구역 개편 직전인 1912년에 발행된 『지방행정구역명칭총람』에 군시면이 23개마을 군종면이 44마을로 기록되었다.
영암읍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시 군시면(郡始面)과 군종면(郡終面)을 통폐합하여 영암군의 소재지이므로 영암면이라 개칭하고 회문(會門), 교동(校洞), 서남(西南), 동무(東武), 역(驛), 남풍(南豊), 춘양(春楊), 용흥(龍興), 개신(開新), 망호(望湖), 대신(大新), 장암(場岩), 학송(學松), 농덕(農德), 한대(寒大)리의 15개 리로 통폐합 되었고 1973년 7월 1일 군조례 제 287호에 의하여 군서면 송평리를 편입하여 16개리로 확장, 군청소재지 읍(邑)으로 승격(昇格)되어 동(東)으로는 금정면과 강진군 옴천면, 북(北)으로는 덕진면, 서(西)쪽으로는 군서면 남(南)쪽은 월출산을 배경으로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유래

영암읍 마을 유래 - 마을명, 유래 제공 표
마을명 유래
회문리 마을 앞에 우뚝 솟은 월출산에 둘러싸여 명당의 자리로서 용처럼 기성이 울린다는 용치암에 힘입어 모인곳이라 하여 회문리라 하였음.
교동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교리와 동리를 병합하여 교동리라 하였음.
서남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문내리와 남문내리를 병합하여 서남리라 하였음.
동무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문내리, 동외리, 무학리를 병합하여 동외와 무학의 이름을 따서동무리라 하였음.
역리 본래 영암군 군서면의 지역으로 영보역이 있었으므로 역몰, 역촌 또는 영보역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역리라 하였음.
남풍리 영암읍성의 남문 밖이 되므로 남문밖, 남바께, 남외리 또는 남문의 이름이 남풍문이므로 남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풍리라 하였음.
춘양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비석리, 수양리, 석길리 등을 병함 춘양리라 칭함.
용흥리 본래 낭주골 세실에서 유래되었으며 본래 군서면 지역이었으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탑동과 군동면의 만백동, 반학동을 합하여 용흥리라 함.
개신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영신기, 영신정, 용계리, 장동리와 군시면의 내동, 사자리, 월봉리, 개월리, 쌍정리를 병합하여 개월과 영신기의 이름을 따서 개월리라 하여 영암읍에 편입되었음.
송평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계리, 여운천, 평장리, 보화동, 남천동, 이화평과 서종면의 신기를 병합하여 송계와 평장의 이름을 따서 송평리라 하였으며 1973년 군서면에서 영암읍으로 편입되었음.
망호리 본래 망호정또는 망호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호음정, 후정, 해정, 덕촌리를 병합하여 망호리라 하였음.
대신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족자동, 신복촌, 대야천, 월등, 괴동을 병합하여 대야천과 신복촌의 이름을 따서 대신리라 하였음.
장암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정리, 무덕정, 회화정, 반석정, 영춘정, 신석정을 병합하여 장암의 이름을 따서 장암리라 하였음.
농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농은정, 백운정, 내덕정, 농내리, 월정리, 갈동을 병합하여 농은정과 둔덕정의 이름을 따 농덕리라 하였음.
학송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춘동, 원교리, 월송정, 구상리, 반송정, 학동을 병합하여 학동과 반송정의 이름을 따 학송리라 하였음.
한대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당동, 광대동, 평촌리, 상촌리, 신사동, 각동리, 내촌리를 병합하여 한 대리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