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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연 혁

영암군의 11 읍면의 하나로 동쪽은 금정면, 남쪽은 영암읍, 서쪽은 도포면, 북쪽은 신북면에 접하여, 이전에는 면내 용산리, 장선리, 덕진리 일부가 영산강의 해수면에 접하였으나, 영암과 목포를 연결한 영산강 하구둑 축조로 내륙지역이 되었다. 조선 정조(正祖) 때 발행한 호구총수(1798년)에 의하면 영암읍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일시면(北一始面)이라 하여 46마을을 관활하였고, 일제 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북이종면(北二終面)의 만송정(晩松亭), 월계리(月溪里)를 병합하여 용산(龍山). 장선(長善). 금강(錦江). 덕진(德津). 백계(栢溪). 영등(永嶝). 운암(雲岩). 영보(永保). 노송(老松)의 9개 리 41 마을로 개편, 관할 하였으며 1929년 면 명칭의 변경으로 덕진면(德津面)으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덕진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덕진다리(德津橋) 전설과 관련한 덕진리가 면소재지가 되므로 덕진면(德津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유래

덕진면 마을 유래 - 마을명, 유래 제공 표
마을명 유래
영보정 영보리 내동마을 남쪽에 있는 정자로 세종 때 예문관 직제학 연촌 최덕지와 그의 손자 충성과 외손 산정 신영수가 세웠음.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로 유명하며 매년 5월 5일 풍향제를 개최하고 있음.
덕진다리
(덕진교)
덕진다리는 덕진면과 영암읍의 경계에 있는 다리로, 신라 시대 덕진이라는 여인이 지금의 덕진면 덕진강변에서 여인숙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강에 다리가 없어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덕진여인은 이 강에 다리를 놓고자 땅속에 항아리를 묻어놓고 한푼두푼 돈을 저축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후 새로 부임한 영암원님의 첫날밤 꿈에 소복을 한 여인이 동헌 뜰에 꿇어앉아 "이 강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다리를 놓아주는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제 집에서 동쪽으로 다섯 발걸음 땅속에 돈 300냥을 묻어두었으니 그돈을 파내어 제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잠에서 깨어난 영암원님은 그 돈을 찾아내어 다리를 놓고 그 여인의 이름을 따서 "덕진교"라 명명하였음.
그후 세인들은 이 덕진 여인의 공덕심과 덕망을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하여 다리 근처에 비를 세워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면장이 제관이 되어 추모제를 지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