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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산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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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김창조 (樂聖 金昌祖 1856~l919)
김창조는 1856년 7월 전남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습적인 율객(기악 연주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원래 재인(당시의 신분제도에서 천민에 속하는 직업적 음악가들에 대한 명칭) 계층에 속했던 그의 음악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농사를 겸하는 빈곤한 처지에 있었다.

김창조는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어렸을때부터 민간 악기들의 음악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 수업을 시작한 것은 7~8세 정도였는데 그의 음악에 대한 숙달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음악형상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일찍부터 그는 주위로부터 음악적 재능이 인정받았다.

김창조가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에 들어선 것은 그의 나이 30세(1885년)부터였다. 그는 자신에 대해 엄격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음악계의 흐름이 흥행적이며 세습적인 것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과 자기 예술을 공개함에 있어서도 범상치 않은 절제를 준수하였다는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1890년(35세) 이후에는 연주와 창작 그리고 후진양성을 병행하여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1890년부터 1895년 사이에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산조(散調)라는 하나의 음악 형식을 개척하였다. 그는 산조를 가지고 광범위한 대중(군중)앞에 출현하였다. 전주와 광주를 위시한 전라도 일대와 경상도 대구 등지를 무대로 동서를 오가며 활동했다. 김창조의 활동이 일부 지역에 군한되었다고는 하나 그가 뿌린 산조의 씨앗은 도처에서 뿌리를 박기 시작했고 더욱 넓은 범위로 대중화되었다.

1915년(60세) 고향을 떠나 광주로 옮겨온후 활발한 연주활동과 아울러 후진을 위한 교육사업도 병행하였으며, 1916년(61세)에 전주로 거처를 옮겨 전주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후진육성사업을 병행하였다.

1919년 8월 광주에서 생(64세)을 마감하였으며 근세민간 기악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가장 빛나는 공적을 남긴 분으로 가야금 산조를 작곡함으로써 모든 산조음악의 효시가 되었다.
만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