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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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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군 김완장군 영정사진

김완장군

김완 장군은 1577년 (宣祖 10년) 8월 23일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899번지에서 학천군(鶴川君) 휘(諱) 극조와 모부인(母夫人) 천안전씨(天安全氏)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났다.
전 부인이 맹호(猛虎)가 품속으로 들어오고, 영암만 바닷물이 그의 치마폭으로 몰려드는 상서러운 꿈을 꾸고 임신하였으며, 출생하였을 때에는 흰 기운이 방안에 가득하였다가 하루가 지난 후에야 흩어지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고들 한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자라면서 기골이 장대하고 여력이 다른 사람과 달리 출중하여 크나큰 솥도 쉽게 드는 힘이 있었다. 또한 재주와 지략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도 뛰어 났다고 한다.
1615년 관관무제시예(冠觀武才試藝)에 장원 급제 후 고산진 첨사, 전라우수군 병마절도사를 걸쳐 평안도 방어사로 있던 중 이괄의 난을 당해 이를 평정한 공으로 진무공신 가의대부 학성군(鶴城君)으로 책봉됨과 동시에 금궤철권 및 영정을 하사받았다.

또한 1634년 훈련원 도정, 황해도 병사 겸 황주 목사등의 벼슬을 역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이듬해 장군 나이 59세이던 1635년 2월 2일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서 서거하였다. 사후 자헌대부 병조판서로 추대 되었으며, 영조 24년(1748)에 양무공(襄武公) 이란 시호(諡號)와 함께 부조묘의 명을 받았다.

※ 김완 장군 영정은 보물제 1305호(2000.12. 22)로 지정되어 있으며,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는 구고사 및 김완 장군 부조묘(도 지정 기념물 제 49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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