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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전설

도선국사 (군서면 구림)

신라 시대 말엽이었습니다.
우람한 월출산 기슭에 자리잡은 성기동 마을 처녀가 북풍이 매섭게 불어 오는데도 불구하고 빨랫감을 이고 성기동 통샘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 춥다냐?"
혼자 소리로 중얼거리던 처녀는 빨랫감을 통샘 부근에 내려 놓았습니다. 월출산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물줄기가 유난히 손이 시리게 보였습니다. 처녀는 한참 동안 흘러 내리는 시냇물을 바라보다가 빨랫감을 맑은 물에 적신 후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빨래가 거의 끝날 무렵 처녀는 손이 시려워 두 손을 겨드랑이에다 대고 손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란 오이 하나가 떠내려와 처녀의 발밑 물 위에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웬 오이가 떠내려 왔을까?"
처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방망이를 주워 들고는 오이를 떠다 밀며, 마지막 남은 빨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이는 처녀가 떠다 밀자 시냇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빨래를 다 마쳤을 때였습니다. 조금 전에 빨래 방망이로 떠밀어내었던 그 오이가 다시 흐르는 물줄기를 거술러 처녀가 있는 곳에 와서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네. 내가 방금 떠밀어 내었는데 오이가 거슬러서 다시 오다니..."
처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파란 오이를 물에서 건져 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빨래를 한 뒤라서인지 오이맛이 무척 맛있었습니다. 처녀는 오이 하나를 다 씹어 먹고는 빨랫감을 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처녀의 배가 똥똥하게 불러졌습니다.
"너, 배가 왜 그러냐?"
"모르겠어요."
깜짝 놀라 묻는 어머니의 물음에 처녀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습니다.
"예삿일이 아니구나. 너 혹 부정을 저지른 것 아니냐?"
"아니어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어요."
어머니는 처녀를 다그쳤습니다.
"바른대로 말해라, 동네 사람 부끄워서 어디 밖에라도 나갈 수 있어야지."
"어머니, 죄송해요."
마을 사람들은 이미 처녀가 사내를 보았다고 수근거렸습니다.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고 하듯이 별의별 억축이 나돌았습니다. 처녀의 부모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처녀에게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는 매일같이 처녀를 다그쳤습니다.
"그 사내가 누구냐?"
"정말이지 사내를 본 적은 없어요."
"그게 정말이냐?"
"네."
"그렇다면 다른 이상한 일은 없었느냐?"
처녀는 울먹이다가 몇 달 전 빨래터에서 이상한 오이가 떠 내려와 그걸 먹었던 일을 기억해냈습니다.
"몇 달 전 통샘에서 빨래하다가 오이가 떠내려오길래 먹었어요."
"무슨 오이가 겨울철에 냇가에 떠내려 왔다냐? 그걸 누가 믿겠니?"
"정말이어요."
딸의 진지한 대답이 있었지만 처녀의 부모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자 처녀는 우람하게 잘 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거 원, 부끄러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당장 공동묘지에다 버려라."
처녀는 아버지의 호령에 갓난아이를 부둥켜 안고 공동묘지가 있었던 국사봉의 갈대밭에다 버렸습니다.
"아가야, 용서해라."
처녀는 울먹이며 아가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처녀는 그날부터 방에 틀어박혀 울먹이며 아기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버린 지 삼 일째 되는 날, 처녀는 버린 아기를 보려고 국사봉 숲 속을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기를 놓아두었던 곳에 수 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아기를 감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아기 곁에 이르자 비둘기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아기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아기 주위에는 무수한 비둘기 깃털이 아기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몇몇 비둘기는 아기의 입에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처녀를 보자 방긋 웃었습니다.
"아가야!"
처녀는 와락 아기를 껴 안았습니다. 한참 동안 아기를 껴안고 기뻐하더니 처녀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아기를 껴안고 오는 딸을 본 부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도 살아 있더냐?"
"네."
처녀는 비둘기들이 아기를 품고 먹여 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본대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처녀의 부모는 보통 아기가 아님을 깨닫고 그 아이를 집에서 키우도록 처녀에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자라면서 보통 아이와는 달리 매우 총명하였습니다. 글 공부도 뛰어나고 활쏘기, 말타기 등 무술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여 주위 사람을 무척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위 사람들의 시샘이 더욱 컸는가 봅니다.

"애비없는 자식." 이렇게 놀리는 또래 아이들이 많고 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지자 하는 수 없이 절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당시 월산 뒤쪽의 초수동이라는 곳에 월암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열두 살 무렵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도선은 불가에 입문하여 도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풍수지리에 밝고, 도가 경지에 이른 일행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일행 스님은 천기를 보더니, 사람을 시켜 우리나라 월출산 밑에 사는 기인, 도선을 데리고 오게 하였습니다. 도선을 제자로 삼아 중국에 이롭게 하려는 계산에서였습니다. 도선은 일행 스님 밑에서 풍수지리를 배우고, 도를 깨달은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일행 스님의 심중을 이미 깨달았음은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일행 스님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도를 깨달아 도술을 부릴 수 있게까지 되었습니다.
"스님, 일은 잘 되었는지요?"
중국의 황실 신하가 일행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마 도선은 제 나라에 돌아가 우리를 이롭게 할 것입니다."
"다 일행 스님 덕분이지요."
"그런데, 지금도 계속해서 도선의 나라에서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 우리나라를 위협해 올 것인데 그게 걱정이오." 중국의 높은 신하는 깜짝 놀라며 일행에게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어찌 하면 좋겠소? 스님."
"글쎄요."
"스님께서 좋은 방도를 일러 주시구려."
일행 스님은 신하에게 우리나라를 제압할 방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도선의 나라에 신령스런 산들이 많으니 도술을 부려 산세를 죽여야 하오. 아마 도선도 제 나라 산세를 죽이고 있겠지만......"
"도선이 제 나라 산세의 맥을 끊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신하가 반문하자 일행 스님은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도선이 언젠가는 깨달아 오히려 우리의 일을 방해할 것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방도를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일행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은 뒤 신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사람을 보내 도선의 나라 곳곳에 있는 산의 맥을 잘라야 합니다."

중국 황실에서는 사람을 우리나라에 보내어 우리 나라 높은 산, 즉 인물이 나올 만한 산의 맥을 끊게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어떤 곳에서는 산의 맥을 끊기자 붉은 피가 흘러 내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도선은 이런 사실을 알고 백두산 상봉에다 중국 땅을 향해 철방아를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철방아를 밟아 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러자 중국에 큰 인물들이 죽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철방아를 한번씩 찧을 때마다 한 사람씩 중국의 큰 인물들이 죽어가자 중국 황제는 일행을 불렀습니다.
"요즘은 내 귀한 신하가 죽어가니 웬 일이오?"
"그건 바로 도선이의 짓입니다."
"그렇다면 당장 도선이를 불러 오게 하시오."
"소승이 부르면 오지 않을 겁니다. 이미 도선이 제 뜻을 알아차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하면 좋겠소?"
"황제의 명으로 불러 들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일행이 황제께 말씀드리자 황제는 사신을 보내 도선을 잡아들이게 했습니다. 도선은 이미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도선은 여러 절을 짓고 풍수지리에 밝아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도선은 고향을 떠나면서 구림에 있는 흰덕바위에다 자기의 적삼을 벗어 놓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살아있으면 이 바위가 하얗게 변할 것이고 이 바위가 검으면 제가 죽은 줄 아시오."

비장한 각오로 한 마디의 말을 남기고 도선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이 바위가 구림에 남아 있고 도선국사를 버렸다는 공동묘지가 지금은 마을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도선국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고 여러 가지 이야기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