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유물 아카이브

박물관 소장유물 아카이브

남만토란형물항아리

작가 : 나카가와이사쿠(中川伊作)   | 유물번호 : 130095   |   도기구분 : 하정웅컬렉션   |   국적/시대 : 현대   |   크기 : 고: 16.0cm, 구경: 14.5cm, 저경: 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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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설명
일본은 규슈 남부 및 오키나와 지역을 만(蠻)이라 칭하였으며,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한국은 류큐 왕국 및 동남아시아의 국가들과 조공 무역을 하였는데, 이들을 남만이라 불렀다.
토란형태의 뚜껑 있는 물항아리로 표면에 소성과정에서 재가 녹아 자연유가 형성되어 있으며, 인공적으로 흘린듯한 유약의 요변효과가 있는 작품이다.
물항아리는 일본 다도에 주로 활용하는 다도구의 일종으로 다실에서 사용한 깨끗한 물을 넣어놓는 도구이다. 물항아리는 도자기, 목제, 금속, 유리 등 다양하지만 대개는 도자기를 사용한다.

작가설명
일본의 저명한 판화가이자 도예가인 나카가와 이사쿠는 1921년 즈음 미술학도일 때 옛 성터에서 발견되었다는 토기항아리를 발견하고 감명을 받았다. 이후 1929년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옛 토기 항아리와 비슷한 남만도기에 매료되어 수집을 시작하였고, 1938년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수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2년부터 오키나와에서 직접 도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의 미술학교에서 동양화를 강의하였다. 당시 미국은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와 같은 새로운 사조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던 시기로 기존의 미술표현과 다른 조형 세계에 대한 경험의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이 나카가와 이사쿠로 하여금 오키나와 도기가 갖는 원시성과 비정형의 자연미에 주목하게 된 동기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나카가와 이사쿠는 영암의 붉은 흙과 같은 오키나와의 붉은 흙에 독창적인 목판화 기법을 적용하여 새로운 무유도기의 세계를 연 남만도기 작가이다. 특히 오키나와의 붉은 흙에 그 지역의 토산물인 해초, 소금, 산호초, 사철, 진주, 산양똥 등을 사용하여 강한 산화염에서 불을 순간적으로 멈춰 다양한 요변을 추구한 남만도기의 기법은 기존의 실용적인 틀에서 벗어나 원시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하며 조형미 있는 예술 세계를 창조하였다.
하정웅 기증자가 나카가와 이사쿠를 만난 것을 1977년으로, 하정웅은 나카가와 이사쿠의 무유도기를 오키나와현의 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박물관의 공간 문제로 기증조건이 맞지 않아 영암군에 기증되었다.

작가 약력
나카가와 이사쿠 (1921~2000)
1899년교토 출생
1921년교토 시립 회화 전문 학교 졸업
1928년일본 창작 판화 협회 최초 회원
1930 ~ 32년문부성주최일본판화순회전
1938년남만야키컬렉션 100교토국립박물관 전시 야나기무네요시와 민속협회원 활동 오키나와행의 계기
1941년「남방화천」(교토서원)저술
1958년일본창조판화 아카데미상 수상
1960년도미, 샌프란시스코 중심으로 개인전시회 개최、주로 목판화소개
1964년샌프란시스코 미술학교에서 객원교수, 주립 대학,교육기관에서 동양화강의
1966년워싱턴수채화협회 왕립박람회에 출품, 명예수상
1967년멕시코, 과테말라 스케치 여행
1972년오키나와에서 남만야키시작함
1977 ~ 92년오키나와 치바에 등요 축조。이후 도쿄、나고야、교토、오사카、야마구치、기타큐슈 오키나와 각지의 도자기와남만야키, 판화 작품과 함께 개인전 개최
2000 ~ 3년오키나와、나하에서 남만도자기・판화 개인전 개최
2000년1월2일서거(향년10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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